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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4 Sketches of a P.O.W. in KOREA(조선일보 2004.9.8일 보도참고요함).1945년 초판./1945

Paperback,octavo.30 pages. First and only edition. Extremely rare source on British Prisoners of War captured by Japanese amry in 1942 and lived in Korea up to the finish of War in August 1945.Collection of drawing and skecthes ,prepared under difficult conditions and with poor materials ,represents some of experiences as Prisons of War in Korea during World War Second.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 잡힌 영국과 호주 출신 연합군 전쟁포로 수백 명이 한반도에 설치된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모습을 담은 그림 자료가 공개됐다. ‘한국의 전쟁포로가 그린 스케치(SKETCHES OF A P.O.W IN KOREA)’라는 제목의 30쪽 분량인 소책자는 존 윌킨슨(John Wilkinson)이란 호주군 포로가 쓰고 그린 것. 연합군 포로들의 선상, 수용소 생활상, 당시 한국의 모습 등을 그림과 짧은 글로 소개하고 있다. 싱가포르에 수용되어있다 1942년 9월 22일 부산에 내린 그는 1945년 종전을 맞을 때까지 서울과 함흥의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억류됐다. 책자는 고서점 ‘아트뱅크’의 윤형원(尹亨源) 대표가 최근 입수한 자료를 본지에 공개한 것이다. 윌킨슨은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노역은 몹시 힘들었지만, 식료품을 훔칠 수 있어 포로들이 좋아했다” “매점에 물건이 거의 없었으며, 겨울에 수용소 내부온도가 0도 가까이 떨어져 포로들이 한곳에 모여 체온을 유지해야 했다”고 적고 있다. ▲ 갓 쓰고 도포를 입은 당시 한국 중·상류층의 모습 그는 또 서울서 본 조선인의 삶도 소개하고 있다. 장례식 상여가 지나가는 모습은 “울긋불긋한 천이 화려해 마치 결혼식 같았다”고 했고, 갓 쓰고 두루마기로 정장을 한 한국 노인, 털모자 차림의 남자 등 한국인의 모습도 담았다. 새해를 맞아 일본식 찹쌀떡을 치는 모습도 그리고 있다. 포로수용소는 용산 부근에 있는 붉은 벽돌 4층 건물로, 이곳에 수용된 포로들은 공장부지 조성 작업 등 다양한 노역에 동원됐다. 윌킨슨은 “궤도차에 돌을 싣고 수백m를 왕복하는 일을 하루 최고 12회나 했으며, 작업 도중 2명이 사고로 죽었다”고 기록했다. 윌킨슨은 이 책을 “한국 땅에서 죽은 사람들, 특히 시드니 출신 헤이터 부대에 바친다”고 썼다. 이 책은 1945년 호주 멜버른의 윌크 출판사에서 간행됐다.
J.D.Wilkinson 영어 Wilke and Co.Pty.Ltd.Melbourne 초판 \ 1,000,000

20031126 100여년 전 외국인이 그린 원화 2점 공개 공방대에 부채… 이방인이 그린 '조선 멋쟁이'(조선일보 2003년 11월26일 보도)/1857

5사진술이 본격 발달하기 전인 19세기 말~20세기 초, 서구 열강이 파견한 배를 타고 온 외국 화가들은 이국 풍경을 경쟁적으로 그려 발표했다. 당시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그린 원화가 발견됐다. 고서지 수집상인 윤형원 ‘아트뱅크’ 대표는 최근 영국 런던의 한 고서점에서 구입해 들여온 100년 전 그림 2점을 25일 공개했다. 부산항을 그린 듯한 수채화 한 점과 거리에서 마주친 한국인들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연필 스케치다. 이 원화들을 판화 기법으로 제작, 신문에 찍은 ‘삽화 버전’은 지난해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에 등장했다. 정통 화가의 본격 작품, 혹은 아마추어의 취미 활동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진을 대신한 기록용 스케치다. 곰방대를 빨며 한 손에 부채를 든 사내 그림 옆에는 ‘멋쟁이(Dandy)’라고 적혀 있다. 봇짐 진 장사치도 등장하고 머리를 싸맨 일꾼들, 더벅머리 남정네의 표정도 생생히 잡아냈다. 길바닥에 자리잡고 앉아 슥슥 스케치한 듯한 그림은 오늘로 치면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인 영국인 톰 브라운(Tom Browne)의 작품. 인물의 표정과 특징을 부각시키며 100년 전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생생하고 재미있게 그렸다. 옥스퍼드대가 출간한 인명사전에는 브라운(1870~1910)이 로열 아카데미에서 여러 차례 전시를 열었던 화가 겸 삽화가로 각종 신문에 그림을 게재하며 이름을 날린 것으로 돼 있다. 인쇄소 견습공 출신인 브라운은 영국 ‘태틀러’ ‘펀치’ ‘스케치’, 또 미국 ‘뉴욕 타임스’ ‘뉴욕 헤럴드’ ‘시카고 트리뷴’ 등에 스케치와 만화를 발표했으며 위트 넘치고 유연한 선으로 각광받았다. 그는 1909년 중국과 일본을 여행했는데 아마도 당시 한국에도 들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윤형원 대표가 이번에 발견한 그림은 ‘그래픽’지 1909년 12월 4일자와 1910년 1월 29일자에 실렸다. 제목은 ‘은둔의 왕국을 찾은 기행 작가-톰 브라운이 본 기묘한 한국 사람들’. 그의 다양한 ‘코리아 스케치’가 등장한 당시 신문에는 ‘한국은 이상한 머리장식의 나라다. 뻣뻣하고 투명한 모자는 섬세한 말털로 짠 것인데 보통 결혼한 남자들이 쓴다…아주 탁월한 우산의 기능을 하는 모자도 있다’고 돼 있다. 갓 쓰고 하얀 도포를 차려입은 남자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 뒤로는 성벽과 초가집이 보인다. 세필로 꼼꼼하게 그려진 수채화다. 화가의 휴대용 스케치북 크기(가로 21.5㎝ 세로 13㎝)만한 그림 뒤에는 펜으로 ‘Fusankai city Tschaosien Corea’라 적혀 있다. 윤형원씨는 ‘부산 풍경 같다’고 말했다. 그 옆에 적힌 ‘Clarke’는 화가 혹은 소장자의 이름, ‘Greenwich Hospital’은 그림이 처음 발견된, 혹은 소장됐던 ‘그리니치 병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의 ‘런던 화보 뉴스’ 1858년 4월 24일자에는 이 수채화와 똑같은 구도의 도판이 실렸다. 같은 면에 한국인을 그린 그림과 일본 나가사키 풍경도 등장한다. 기사 제목은 ‘일본과 한국 스케치’. ‘해안가는 마치 중국처럼 산이 많고 불모지를 연상케 하는 지형이었다. 그러나 마을은 잘 가꿔진 땅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과일나무와 소나무가 보였다. 언덕은 푸르고 나무도 많았는데 주위에 나무를 독특하게 심어놓은 봉분이 곳곳에 보였다…사람들은 아래로 흘러내리는 헐렁한 가운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바지는 발목쯤에서 잡아맸고 발에는 면 스타킹과 신기하게 생긴 짚신을 신었다…품위 있는 자태와 우호적인 표정이 인상적이었다…그러나 주민들이 허락하지 않아 땅을 밟지 못했다. 그들은 우리 배에 타고 있던 중국인 통역관과도 대화를 거부했다….”(신문기사 일부) 원화를 살펴본 미술사학자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한국이 서구에 노출되기 시작한 개화기 무렵의 지도와 신문은 많이 공개되고 있으나 원화 발견은 드물다”며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영어 . 초판 \ 0

20040113 '하멜표류기' 1670년 불어 초판 국내 입수(조선일보 2004년 1월 13일 보도)/1670

17세기 조선의 사정을 담은 기행문 ‘하멜 표류기’의 1670년 프랑스어 초판< 사진 >이 국내에 입수됐다. 고서 상인 윤형원(尹亨源) 아트뱅크 대표는 최근 네덜란드 고서점으로부터 구입한 이 책을 12일 공개했다. 이 책은 1668년 ‘하멜 표류기’의 네덜란드 초판이 나온 지 2년 뒤 미뉘톨리(Minutoli)가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으로, 제목은 ‘제주도 해안에서의 네덜란드 배의 난파에 대한 보고서: 조선 왕국에 대한 묘사와 함께(Relation du Naufrage d’un Vaisseau Holandois, Sur la Coste de l’Isle de Quelpaerts: Avec la Description du Royaume de Cor eㆍ토마 졸리ㆍ168쪽)다. 그동안 국내에 입수된 ‘하멜 표류기’ 최고본(最古本)은 명지대 LG연암문고가 소장한 1672년 독일어 초판이었다.
Hamel Hendrik 불어 Paris, Thomas Jolly 초판 \ 0

20040127 '가장 오래된 태극기 그림' 발견 '박영효 태극기' 보다 최소 2~3개월 앞서 1882년 5월 朝美 통상조약때 계양 추정(조선일보 /2004년 1월 27일 보도)/

가장 오래된 태극기 그림을 담고 있는 미 해군성 항해국 발간 ‘해상 국가들의 깃발’은 책 서문에 ‘3000부를 제작, 각 기관에 분배하기로 1882년 7월 19일 상원에서 결의했다’는 내용이 명기돼 있다. 그렇다면 태극기 자료는 이보다 최소한 2~3개월 앞서 사용됐다는 이야기로, 최초의 태극기가 1882년 8~9월 특명전권대신 겸 수신사(修信使)로 일본에 파견된 박영효가 처음 만들어 사용했다는 그동안의 통설을 뒤집는 결정적 자료다. 박영효의 일기인 ‘사화기략(使和記略)’에는 그가 일본으로 가는 메이지마루(明治丸) 선상에서 미리 준비해 온 ‘태극팔괘도’를 영국 영사 아스턴(Aston)에게 제시했는데 영국인 선장 제임스(James)가 “너무 복잡해 식별이 어렵다”는 의견을 내 ‘8괘도’에서 괘 네 개를 뺀 ‘4괘도’로 고쳤다고 기록돼 있다. 태극기는 다음해인 1883년 3월 국기로 정식 반포됐다. 태극기 전문가 김원모(金源模) 단국대 명예교수는 ‘해상 국가들의 깃발’ 태극기가 “1882년 5월 22일 조미(朝美) 수호통상조약 당시 내걸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앞으로 태극기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을 만큼 획기적인 자료”라고 말했다. 이 태극기는 고서점 ‘아트뱅크’의 윤형원(尹亨源) 대표가 최근 입수한 자료를 26일 본지에 공개했다. 그동안 태극기 그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일본 신문 시사신보(時事新報) 1882년 10월 2일자에 실렸던 ‘조선국기’(흑백)와 청나라 외교문서인 ‘통상장정성안휘편’에 수록된 1883년 제작 ‘고려국기’(채색)였다. ‘해상 국가들의 깃발’은 세계 49개 국가들의 국기를 비롯한 여러 깃발들의 채색 그림들을 수록한 책. 국가들은 알파벳 순으로 배열돼 있으며, 태극기는 청나라 국기인 황룡기(黃龍旗) 오른쪽 ‘코리아(Corea)’난에 ‘기(旗·Ensign)’란 이름으로 게재돼 있다. 태극은 청색이 좌측, 적색이 우측에 자리잡고 있으며, 흑색으로 그려진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는 현재의 태극기에서 좌·우가 바뀐 형태다. 조선의 ‘국기’ 사용에 대한 기록은 박영효 이전에도 있었다.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당시 청나라의 ‘종주국 특사’로 파견된 마건충(馬建忠)은 ‘조선은 청의 속국’이라며 조선측이 청나라의 ‘황룡기’와 비슷한 ‘청운홍룡기’를 게양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 전권특사 슈펠트(Robert Shufeldt) 제독은 이것이 조선을 독립국으로 인정하려는 자신의 정책에 위배된다고 생각, 조선 대표인 신헌(申櫶)·김홍집(金弘集)에게 “국기를 제정해서 사용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조선의 ‘국기’가 조약 당시 성조기와 나란히 게양됐다는 것이다. 김원모 단국대 명예교수는 “1883년의 ‘고려국기’와 태극 모양이 흡사하다는 점에서 태극기의 원형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며 “괘의 좌·우가 바뀐 것은 조약 당시 깃발 뒤편에서 그렸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조미수호통상조약 당시의 ‘국기’가 8괘기였을 것으로 봐 온 이태진(李泰鎭)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박영효의 ‘사화기략’ 기록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의아하다”면서도 “이 책에 적힌 출간연도가 실제로 출간된 시기와 일치한다면 태극기의 사용 시점이 훨씬 올라가는 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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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4 1907년 9월 7일자 프랑스 일뤼스트라시옹지 입수 고종퇴위→군대해산→무장항쟁 진압 보름간의 '일제 만행' 생생하게 묘사 (조선일보 2005년 5월 4일 보도)/1907

헤이그 밀사사건’을 계기로 일본이 고종의 황제퇴위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지금으로부터 98년 전인 1907년 7월 18일의 일이었다. 이후 서울에선 민중 봉기(7월 19~20일)가 잇따랐고, 고종 퇴위(7월 20일, 일설은 22일)→군대 해산(8월 1일) 이후 일본에 대한 무장 항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 당시 보름 동안을 상세하게 기록한 프랑스 시사주간지가 발굴됐다. 릴뤼스트라시옹(현 파리 마치의 전신) 1907년 9월 7일자 ‘서울에서의 사건들’이라는 기사다 한국 관련 해외자료 발굴·수입 전문가인 윤형원 아트뱅크 대표가 최근 입수한 이 주간지에는 3쪽에 걸쳐 6장의 사진과 함께 1907년 7~8월 서울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객관적인 필치로 기록했다. “우리는 한 달 반 전 일본에 의해 진압된 서울의 쿠데타에 대한 사진과 기사를 아무런 첨삭 없이 공개한다”로 시작되는 이 자료에 대해 이태진·이상찬 서울대교수(국사학) 등은 “1907년 7~8월 당시의 역사적 사실들을 새롭게 밝혀주는 귀중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이 자료의 발굴은 그간 사진 속의 상황에 대한 시기와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던 역사적 사건들을 명확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한 예로, 1909년 9월부터 시작된 일제의 ‘남한 대토벌작전’으로 희생된 의병들에 대한 기록으로 알려졌던 사진(맨 위 사진)은 1907년 8월 1일 군대해산 직후 일제에 항쟁하다가 사망한 조선 병사들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바로잡게 됐다. 또 지금까지 고종의 이름(臣 巳火)을 ‘형’으로 발음한 것으로 추정해왔지만 이 잡지에서 ‘Yi-Hyeung’이라고 표기, ‘형’이라고 읽었음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릴뤼스트라시옹은 ‘현장 취재기’에서 일본의 고종 퇴위 요구와 이어진 고종의 양위, 항의 시위, 군대 해산에 이은 무력항쟁을 ‘조선의 쿠데타’라고 명명했다. 기사는 군대 해산에 저항했던 조선군인들의 영웅적 투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며 글을 맺고 있다. “조선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용감한 주검들은 서울의 동쪽 대문(광희문) 밖으로 내버려졌다. 평화롭지만 애국적인 한국인들은 침략자들에 대한 적개심을 이어갈 것이다. 그들은 과거의 승리를 되새길 것이고, 반드시 봉기할 것이다.”
L'illustration,Paris 불어 L'illustration,Paris 초판 \ 0

20050623 한글·영어 병기 애국가 악보 1943년 미 '한국인 연구회보'에 실려… 새로 발굴 (조선일보 2005년 6월 23일 보도)/1943

미국에서 한글과 영어를 병기해 간행한 애국가 악보(1943년 9월)가 새로 발굴됐다. 현전하는 애국가 악보 중 1936년 6월 미국에서 발간된 애국가 악보 다음으로 오래됐다. 애국가 악보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금지단행본’으로 지정한 까닭에 광복 전 악보는 모두 해외에서만 나왔다. 현재까지 전하는 애국가 악보는 모두 4개다. 근현대사료수집가 윤형원 아트뱅크 대표가 22일 공개한 이 악보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운영되던 한국인연구위원회(Korean Research Council)가 계간으로 간행한 ‘한국인연구회보(Korean Research Bulletin)’ 1943년 9월호 첫 페이지에 실려 있다. 애국가 가사를 4절까지 한글로 기록한 뒤, 애국가 1절 가사를 ‘Dong hai mool gwa Paik doo san i…’로 발음나는 대로 알파벳으로 적었다. 애국가는 안익태가 1935년 11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작곡했다. 안익태는 미국에서 발행되던 한국어 주간신문 ‘신한민보’ 1936년 3월 26일자 기고에서 “1930년 미국 상항(샌프란시스코)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은 그곳 예배당에서 제 일생에 처음 부른 대한국(大韓國) 애국가였다”며 “그러나 이 곡조는 스캇치의 술노래(올드 랭 사인)였다가 나중에 이별가로 불린 것인데, 이를 신성한 애국가 곡조로 부르는 것은 대한국의 수치인 줄 자각해 애국가 작곡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글에서 “애국가는 지난 5년 동안의 노력 끝에 1935년 11월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완성했으며,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도착했을 때 한인교회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만년필로 작곡했다”고 밝혔다. ‘신한민보’는 애국가 작곡 경위를 밝힌 안 선생의 기고문을 실은 직후인 1936년 6월 18일자에 “이 악보를 받으신 분은 20전(이상)을 출판비조로 아끼지 않고 보내실 줄을 믿는다”는 광고와 함께 애국가 악보를 별지(別紙)로 신문에 동봉해 독자들에게 배포했다. 이 악보가 현재 남은 애국가 악보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Korean Reaserch Council,L.A 영어 Korean Reaserch Council,L.A 초판 \ 0

20050816 일본, 국권 빼앗기 전에도 살상만행 1919년 3·1운동 관련자 처형사진, 1907년 양민학살로 밝혀져 프랑스 주간지 륄리스트라시옹 … 1907년 8월 10일자에 실려 (조선일보 2005년 8월16일 보도)/1907

여기, 백의(白衣)를 입은 세 명의 조선인이 어느 벌판에서 소형 십자가에 묶인 채 총살을 당했다. 그 옆으로 각반을 한 일본 군인 세 명이 ‘당당하게’ 포즈를 취했다. 당시에도 일종의 ‘폴리스 라인’이 있었던 듯, 멀리서 조선인들이 공개 처형을 지켜 보았다. "무고한 조선인들 상대로 총기 살상능력 실험 대한제국 엄연히 존재했지만 절대권력은 일본" 독립기념관 등 학계에서는 이 사진을 1919년 3·1 운동 관련자 처형 장면으로 알고 있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조선인을 처형할 수 있었다면, 당연히 일제가 조선의 국권을 침탈한 1910년 이후의 장면일 수밖에 없다는 추정이었다. 한데, 이 장면은 대한제국이 엄연히 존재했던 1907년도에 벌어진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총살당한 사람들은 무고한 조선인들로, 총의 살상 거리를 시험하기 위한 ‘실험 대상’으로 죽어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근·현대사료 수집가 윤형원 아트뱅크 대표가 최근 프랑스 주간지 륄리스트라시옹(현 파리마치의 전신) 1907년 8월 10일자에서 이 사진과 관련 기사를 발견했다. 사진 제목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벌어진, 일본인에 의한 한국인 처형’이다. 기사에 따르면, 이 장면은 전라남도 담양에서 벌어졌다. 촬영 시기는 명확히 기록되지 않았지만, 1907년 7월 즈음으로 추정된다. 고종의 강제 퇴위와 조선 군대 해산 등이 연이어 벌어지던 즈음에 민중 봉기가 한반도 여러 곳에서 발생했다. 한반도 서남부 지역에서는 특히 심했다. 이 지역민들은 일본의 속박과 억압을 다른 지역에 비해 심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인의 어장(漁場)이나 주거지 등이 약탈당하기도 했다. 이를 제어할 만한 힘이 없던 조선 정부를 대신해, 일본은 ‘질서 유지’를 명목으로 탄압을 가했다. 재판하는 시늉만 한 채 사형을 대량으로 집행하기도 했다. 역겹고도 잔인한 장면이 연출됐다. 사진 속 세 명의 조선인은 호기심 때문에 철도가 건설되는 곳에 가까이 다가갔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다가갔던 곳의 철로는 밤 동안 탈취된 상태였다. 재판 없이 세 사람은 체포된 채,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일본군은 총기 살상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이 무고한 세 조선인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50m 떨어진 곳에서 조준 사격했을 때 사람이 총에 맞고 죽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에 동원한 것이다. 일본인 장교는 노트에 사격 결과를 기록했다. 기사는, 역사상 유례 없는 만행을 이 조용한 나라에서 행하고 있는 일본은 이제 절대권력이 돼 버렸다며 끝을 맺었다.
L'illustration,Paris 불어 L'illustration,Paris 초판 \ 0

20051112 100여년 전 우리 동요 영문 악보 미국서 발견 Pyel hanna, Na hanna(별 하나 나 하나)Pyel toul, Na toul(별 둘 나 둘)(2005년 11월12일 소년조선일보 보도)/1898

100여 년 전 우리 나라 어린이들이 부르던 전래 동요의 영어 가사와 서양 악보로 실린 자료가 발견됐다. 이 자료는 미국 뉴욕과 보스턴에서 1898년 7~9월에 발간된 ‘미국 민속지’(Journal of American Folk-Lore)로, 한국 관련 서양서지 자료 전문가인 ‘아트뱅크’(www.koreanamuseum.com)의 윤형원 대표가 확인, 공개했다. 이 잡지에는 실린 한국의 전래 동요는 12곡. E B 랜디스(Landis) 씨는 ‘한국의 동요’에서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등의 전래 동요 가사를 영어로 소리 나는 대로 실었고, 영어 해설도 덧붙였다. 가령, ‘달아 달아…’는 ‘Tara, tara, palkuen tara/ I Tai Paiki nolteun tara/…’로, ‘별 하나 나 하나…’는 ‘Pyel hana, Na hanna/ Pyel toul, Na toul/…’로 적고 있다. 여기에 실린 곡들은 당시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던 전래 동요들이다. ‘고추 먹고 맴맴’은 ‘Ko cho mekko, maim, maim/ Tampai mekko, maim, maim/…’으로 적혀 있다. 2번째 줄에서는 ‘담배 먹고’ 돼 있으나 이보다 34년 후인 1932년 윤석중 선생이 펴낸 동요집에는 ‘담배 먹고…’ 대신에 ‘달래 먹고…’로 적고 있다. 이 잡지에는 또 우는 아이를 달래는 노래인 ‘중중까까중’, ‘달아달아 밝은 달아’ 상여꾼의 노래 등도 실려 있다.이 자료는 일제하 일본 동요 체계에 맞춰 전래 동요가 정리됐던 것보다 훨씬 앞선 것이어서 우리 동요의 본래 모습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Journal of American Folk-Lore 영어 Journal of American Folk-Lore 초판 \ 0

20060411 조선시대 우리나라 漢字학습서 ‘유합’ 1838년 독일어 초판본 발견 “서구에서 최초로 번역된 한국 서적” (조선일보 2006년 4월 11일 보도)/1838

서구에 최초로 번역 소개된 한국 서적의 19세기 초 번역본이 발견됐다. 이 책은 독일인 지볼트(Philipp Franz von Siebold·1796~1866·왼쪽 사진)가 1838년 네덜란드 라이덴(Leiden)에서 출간한 ‘유합(類合·Lui H?)’의 초판본으로, 최근 고서점 아트뱅크(koreanamuseum.com)의 윤형원(尹亨源) 대표가 해외에서 입수해 10일 공개했다. 가로 29.5㎝, 세로 37.5㎝의 크기에 42쪽 분량인 이 책은 한자 입문서 ‘유합’의 전문(全文)을 기록하고 글자 양쪽에 뜻과 발음을 나타내는 한글을 함께 적은 뒤, 그 내용을 모두 독일어로 번역했다. 예를 들어 ‘東’에 ‘동녁 동’이라는 뜻과 음을 한글로 적고 뒤에서 ‘Tong(한국 한자 발음) Ost(독일어 뜻) tong nj?k(한국어 뜻)’을 기록했다. 부록으로는 어휘집과 시조, 한시 2편 등이 실렸다. 독일 출신의 의사인 지볼트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파견으로 1823년부터 1830년까지 일본 나가사키(長崎)에서 근무했고, 1828년 조선의 난파 선원들을 만난 것을 계기로 우리나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가 1852년 출간한 ‘일본(Nippon)’의 제7부에 ‘유합’을 번역한 내용이 실렸지만 그 초판이 언제 출간됐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1989년 지볼트에 대한 논문을 썼던 고영근(高永根) 서울대 명예교수는 “1838년의 초판본은 지금까지 확인된 적이 없었다”며 “이번에 발견된 책은 서구에서 가장 먼저 번역된 한국 서적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보다 3년 앞선 1835년 영국 선교사 메드허스트가 한국 서적 ‘왜어유해’ 등을 번역한 ‘조선위국자휘(朝鮮偉國字彙)’를 냈지만 유럽이 아닌 인도네시아에서 출간됐다. 조선 초기에 쓰인 ‘유합’은 1500여 자(字)를 담고 있으며, 조선시대 ‘천자문’과 쌍벽을 이룬 한자 학습서였다. 손희하(孫熙河) 전남대 국문과 교수는 “‘유합’은 중국에서 나온 ‘천자문’과는 달리 우리 고유 문화를 풍부하게 담고 있는 책”이라며, “지볼트의 번역본은 19세기 초의 남부 방언을 담고 있는 귀중한 자료로, 당시 서구인들이 이를 통해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접하고 학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Philipp Franz von Siebold 독어 Lugduni Batavorum, Leiden,Netherlands 초판 \ 0

20030931 [무용]100년전 한국소재 발레악보 첫 공개 ...Die Braut von KOREA (朝鮮에서 온 新婦) 한국을 소재로 외국인이 만든 최초의 음악작품/1897 년(동아일보 2003년 10월 1일자 18면 참고요함) 1897년 5월 22일 Court Opera of Vienna(現 State Opera) 에서 첫 공연되었음. ./1897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작곡가가 한국을 소재로 작곡한 발레음악의 악보가 국내에 공개됐다. 한국관련 해외 서지자료를 발굴 수입하는 ‘아트뱅크’(www.koreanamuseum.com)의 윤형원 대표는 최근 입수한 요제프 바이어(1853∼1913)의 발레곡 ‘한국에서 온 신부(Die Braut von Korea)’ 중 ‘두 번째 접속곡(Zweites Potpourri)’의 피아노 편곡 악보를 29일 공개했다. 이 악보에는 출간연도가 1897년으로 인쇄돼 있으며 발레의 줄거리는 알려지지 않았다. 음악 역사상 ‘이국(異國)주의 시대’로 불린 19세기 말∼20세기 초에는 일본을 소재로 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1904), 설리반의 오페라 ‘미카도’(1885), 중국을 소재로 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1924),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대지의 노래’(1908) 등 동양 소재의 음악작품 창작이 유행이었지만 지금까지 한국 소재의 작품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이번에 ‘한국에서 온 신부’가 입수됨으로써 한국을 소재로 한 음악작품도 쓰였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진 것이다. 노동은 중앙대 교수(음악학)는 “한국이 해외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전인 19세기 말 유럽인 작곡가가 한국을 소재로 발레곡을 작곡했다는 사실은 국내에 처음 알려지는 것”이라며 획기적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본보가 확인한 결과 빈 국립오페라 음악감독을 지낸 작곡가 말러가 1901년 친구인 지휘자 하르트무트 핸헨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이어의 ‘한국에서 온 신부’란 작품을 레퍼토리에 포함시켰다”고 밝혀 이 작품에 대해 언급한 기록이 남아 있다. 바이어는 1885년 빈 궁정 오페라 발레감독으로 취임한 작곡가, 지휘자 겸 바이올리니스트로 22곡의 발레작품을 남겼으며 ‘인형요정’(1888)은 오늘날에도 종종 공연되고 있다.
Josef Bayer 독어 Schlesinger' sche Buch-& Musikhandlung ,Berlin 초판 \ 0

20051112 100여년前한국 동요-자장가 채록악보 美서 발견 (2005년 11월 11일 동아일보 보도)/1897

《대한제국 시기인 100여 년 전 어린이들이 부르던 동요와 민요, 자장가가 영어와 서양 악보로 채록된 자료가 대거 발견됐다. 한국 관련 해외 서지자료를 수집하는 ‘아트뱅크’(www.koreanamuseum.com)의 윤형원(尹亨源) 대표는 1897년 7월과 1898년 7월 미국 뉴욕과 보스턴에서 발간된 ‘미국 민속학보’(Journal of American Folk-Lore)에 한국의 자장가와 동요가 채록돼 있는 것을 찾아내 10일 공개했다. 》 1897년 미국 민속학보에 실린 ‘한국의 어떤 자장가’는 미국인 인류학자인 안나 톨만 스미스 씨가 같은 해 워싱턴에서 열린 여성인류학회에서 발표한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이 논문에는 ‘개야 개야 짖지 마라(Ka ya, Ka ya, chit cha ma ra)/금동아기 잘도 잔다(kum d-ong ag-e chol do jan da)/은동아기 잘도 잔다(Un dong ag-e Chol do jan da)’와 같이 가사를 영어로 음차(音借)해 채록한 자장가와 민요 ‘청춘가’ ‘달노래’가 실려 있다. 여기에 실린 자장가나 민요에는 현재 전해지는 것과는 다른 가사나 구음(口音)이 실려 있어 동요사 연구의 중요 자료로 평가된다. 예를 들어 ‘달아 달아 밝은 달아/이태백이 놀던 달아∼’로 시작되는 ‘달노래’(Moon Song)는 현재 전해지는 가사에는 ‘초가삼간 집을 짓고/양친부모 모셔다가/천년만년 살고지고’로 돼 있는 것과 달리 영어 해석 가사에는 ‘초가삼간에 양친부모 방과 나와 내 아내의 방(one for me and my wife)을 만들어/천년만년 살고지고’라고 표기돼 있어 눈길을 끈다. 저자인 스미스 씨는 “한국의 자장가에 나오는 ‘금자동아, 은자동아’는 아이가 고위관직에 오르기를 염원하는 것이며, ‘나라에는 충성동이, 부모에겐 효성동이’란 구절은 개인적 정체성보다는 유교적 계급질서에 충실한 가치관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설해 놓았다. 1898년 이 학보에 실린 E B 랜디스 씨의 ‘한국의 어린이 동요’란 글에는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별하나 나하나 별둘 나둘’ 등의 전래동요 가사가 영어로 음차돼 실렸고 영어 해석이 덧붙여졌다. 여기에는 우는 아이 달래는 노래, ‘중중까까중’ 등 아이들이 스님을 희롱하는 노래, 상여꾼의 노래 등 동요와 민요 10여 곡이 실려 있다. 중앙대 노동은(魯棟銀·음악학) 교수는 “이 자료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동요의 체계에 맞춰 전래 동요가 정리됐던 것보다 훨씬 앞선 것으로서 우리 어린이 노래의 원형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The American Flo-lore Society 영어 The American Flo-lore Society 초판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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